채광이 좋고 우영팟(텃밭)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사할 집을 보러 다녔다. 저렴한 예산으로 집 좋고, 채광도 좋고, 우영팟을 일굴만한 마당도 있는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타협하며 결국 남향으로 볕이 잘 들고, 앞베란다와 옆베란다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언젠가 나만의 정원을 내 집 앞마당에 둘 수 있기를 꿈꾸며 지금은 ‘베란다 우영팟’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만의 작은 베란다 우영팟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꿈이 많은 사람이다. 에코페미니즘을 삶으로 가져와 자본주의에 굴하지 않고 자급자족할 수 있기를 꿈꾼다. 여전히 내 식탁에 오르는 쌀, 밀가루, 나물, 버섯 등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어떻게 기른 건지 모르고 먹는 것이 더 많지만 뒷면에 적힌 상품설명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제주에서 난 친환경 농산물이라 하면 꼭 사먹어 보곤 한다. 가끔 엄마를 통해 오는 이모네, 할머니네 우영팟 채소들, 참기름, 고춧가루 등은 더 없이 귀한 마음으로 받아와 먹는다. 그러면서 조금씩이라도 직접 길러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게 되었다. 직접 길러 먹으면 탄소 발자국 걱정도 덜하고, GMO 걱정도 없고, 식물(혹은 버섯)이 자라는 과정도 배울 수 있으니까.
꿈은 거창하지만 도시에 살면서 내 먹거리를 직접 길러 먹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우영팟 일굴 땅 한 평 없는 처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한 가지씩 야금야금 내 손으로 베란다 우영팟을 가꿔보려 한다. 이 꼭지는 초보 우영팟지기의 베란다 우영팟 도전기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도 생태적인 삶을 꿈꾸는 에코페미니스트들에게 유용한 정보와 도전기를 공유하고 싶다.
나만의 우영팟이 될 앞베란다. 어떤 공간으로 바뀔지 기대하며 애정을 담아 꾸미고 있다. 남향으로 해가 잘 들어온다.
수국
작년 초겨울 우리집으로 온 수국. 날이 갈수록 그나마 붙어있던 잎도, 꽃잎도 다 떨어지고, 겨울 내내 앙상한 자태를 유지했다. ‘겨울이어서 잎이 다 떨어진 거야’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심 죽은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랬던 수국이 우리집에서 제일 먼저 봄이 왔다고 알려준다. 하나둘 잎을 내더니 어느새 잎이 풍성해졌다. 겨우내 웅크려있느라 많이 답답했나 보다. 괜한 걱정을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걱정들도 다 그런 거면 좋겠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길에서 주워온 철쭉
작년 여름 우연히 길거리에서 포트자국 그대로 버려진 묘종 하나를 주웠다. 무슨 식물인지도 모르고, 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왠지 뿌리는 살아있을 것 같아 주워와 1회용 컵에 심어뒀다. 집에 데려와 돌보니 다행히 얼마 안 있어 새 잎이 돋았고, 잎의 모양을 보아 ‘철쭉이구나’ 싶었다. 더디지만 하나둘 잎을 내며 자라나는 철쭉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들여다보니 볕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를 와서 그런 건지, 이 아이도 봄이 오는 걸 느꼈는지 꽃봉오리를 맺었다. 길거리에서 마주한 운명적 만남이 서로를 돌보는 즐거움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저 작은 몸집으로 꽃까지 피어보려는 철쭉에게 깊은 감동을 선물 받기까지 한다. 네가 너무 대단해!
감자
감자는 봄에 가장 먼저 키울 수 있는 작물 중 하나로 이른 봄에 심어서 장마 전에 수확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건 주로 육지의 경우고, 제주에서는 겨울에도 감자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월동용으로 재배한다. 여기까지가 감자 재배와 관련한 일반적인 정보고, 사실 나는 우연히 집에 있던 감자가 싹이 많이 나버려서 한 번 심어봤다. (원래 감자를 심을 때는 바이러스의 위험 때문에 씨감자를 따로 사서 재배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잘 자랄 줄 몰랐는데 감자는 정말 잘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서 금세 화분이 작아졌다. 흙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감자가 알알이 맺히고 있을까? 더 넓고 깊은 화분에 심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미안해 감자야. 다음에 감자를 심을 때는 꼭 더 큰 화분에 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