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뒤늦게 파프리카가 꽃을 피우더니 열매를 달았다. 아쉽게도 딱 2개의 열매가 달렸다. 더디게 자라나 싶더니 몸집을 얼마 키우지도 못하고 성장을 멈춰버렸다. 대신 붉은빛으로 바뀌더니 빨간색 파프리카가 되었다. 작고 못생겼어도 엄연한 파프리카가 우리 집 우영팟에서 나오다니 역시 우영팟이라고 부를 만하군. 생으로 먹으며 비교해 본 결과 파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말 달고 맛있는 파프리카였다.
오이고추&방울토마토
다행히도 지난 3개의 수확 이후 더 많은 오이 고추를 수확해 먹었다. 한 움큼씩 두어 번 더 수확해 먹었으니 우리 밭 작물 중에는 나름의 풍작이었다. 보통 도시에 사는 집에서 작물을 심을 때 왜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많이 심는지 알 것 같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수확량이 나쁘지 않다. 방울토마토 줄기에는 지금도 새로운 열매가 달려있다.
로즈마리
로즈마리는 물꽂이로 쉽게 번식이 가능한 식물 중 하나다. 로즈마리를 꺾어서 아래쪽 잎을 어느 정도 제거해준 후 줄기를 물에 담가 둔다.. 뿌리가 나오면 흙에 옮겨 심으면 된다.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 로즈마리 잎은 생으로도 쓰고, 말려서도 쓸 수 있어 사용하기 용이하다.
음식물 쓰레기 퇴비 만들기
최대한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삶을 고민하다가 누군가 인터넷에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 만드는 법’을 올린 걸 보게 됐다. 베란다에 우영팟도 있으니 퇴비를 만들어서 식물들에게 주면 나름의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퇴비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1. 크기가 넉넉한 스티로폼 박스를 준비한다.
2. 뚜껑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고 양파망을 이용해 막아준다.(벌레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되 통기성을 좋게 하기 위함)
3. 박스의 절반 정도를 상토로 채워준다. 채소나 과일 껍질 등 분해가 잘 될 수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적당히 잘라 넣어 넣고 잘 섞어준다. 필수는 아니지만 EM 발효 용액이 있다면 분무해줘도 좋다.
4. 다 섞은 뒤에는 음식물이 보이지 않도록 흙으로 잘 덮어준다. 매일 한 번씩 흙 전체를 뒤집어 준다.
* 박스를 두 개 이상 만들어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 좋다. 통이 어느 정도 차면 발효할 수 있도록 두고 다른 통을 사용하면 된다. 통은 쉬고 있는 중에도 매일 한 번씩 뒤집어준다.
* 흙의 온도가 상온보다 높으면 발효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다. 발효에는 수분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 발효가 잘 된 흙에 식물을 심을 예정이라면 흙의 산성도 때문에 그대로 쓰기보다는 다른 흙과 섞어 사용하는 것이 좋다.
* 유튜브에 검색하면 더 자세한 설명과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물
샤워할 때 샤워기의 뜨거운 물이 나오기 전까지 흘려보내는 찬 물을 받아두었다가 주로 식물들 물을 주는 데 썼다. 그래서 늘 욕실에 물뿌리개와 리빙박스를 하나씩 두어 물을 보관했다. 식물들 물 줄 때 말고도 손빨래를 하거나 청소할 때 등 활용도가 꽤 높다.
버섯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 갔다가 버섯재배 키트를 구매해서 길러 보았다. 예전에 표고버섯 키트와 느타리버섯 키트를 선물 받아서 길러 본 적 있었는데 아무래도 키트는 한두 번 수확을 하면 끝이라서 지속성이 떨어져 아쉽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베란다에서 기를 수 있도록 나무토막에 버섯 종균을 삽입한 종균 목을 팔기도 한다. 당근에서도 종균 목 판매글을 본 적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또 버섯을 기른다면 다음에는 종균 목을 시도해볼 것 같다. 하지만 키트로도 버섯이 자라나는 과정과 수확의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버섯 키트는 식물과 달리 짧은 기간에 쑥쑥 크는 모습을 실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일주일 정도면 수확해서 먹을 수 있으니 바쁘다 바빠 현대인에게 딱인 상품일지도.
[우영팟 수확물 레시피-파프리카 초밥]
1. 파프리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오븐에 굽는다. (230도 15분. 오븐에 따라 조절)
2. 단촛물(식초3 설탕2 소금1)을 만들어 밥에 넣어 섞는다.
3. 한 김 식은 파프리카의 겉껍질을 벗긴다.
4. 밥을 초밥 모양으로 작게 뭉쳐서 고추냉이를 얹고 파프리카를 위에 얹는다.
(버섯, 곤약, 가지, 애호박 등 다양한 재료로 맛있는 초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겨울호를 끝으로 베란다 우영팟을 정리할 예정이다.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식물을 심고 가꾸며 나만의 텃밭이 생겼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비옥하고 넓은 땅이 아닌 우리 집 베란다에 심기게 된 식물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사실 좁은 베란다보다도 초보 텃밭지기여서 제 때 필요를 채워주지 못한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일상을 뜯어볼수록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단절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입는 것, 먹는 것, 내 일상을 채우는 사소한 물건 하나도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식재료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잘 모른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멀어져만 가고 유통과정은 점점 복잡해진다. 그러다 보니 생산자는 다른 이들이 먹을 걸 생산하면서도 제 입에 풀칠은 할 수 없는 오늘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회에 살면서 내 손으로 내가 먹을 걸 길러 먹는다는 것은 참 귀중한 경험이었다. 마트에 가면 365일 언제든지 살 수 있던 토마토를 길러보니 사계절 내내 수확하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대량으로 사 온 탓에 냉장고에서 썩고 있는 채소를 내가 길렀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그냥 음식물쓰레기로 버릴 수가 없었다. 평소 요리할 때는 그냥 식재료 중 하나에 불과했던 채소도 직접 길러보니 우리 집 부엌에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드는지 알아버렸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어디에 살든지 자급자족을 꿈꾸고, 나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작은 부분의 과정을 깨달아 알아가고 싶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가능한 자연의 일부로 순환될 수 있는 삶을 꿈꾸고 싶다.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도, 음식물쓰레기 퇴비를 만드는 일도 그런 순환의 노력이다. 지구상에서 쓰레기를 만드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우영팟에서 덜 유해한 인간이 되기를 꿈꾼다.
-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순환의 삶을 꿈꾸는 데에 저의 베란다 우영팟 도전기가 제안이 되고, 독려가 되고, 응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