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지나 본격적으로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베란다 우영팟에는 큰 변화가 시작됐다. 나만의 베란다 우영팟을 만들려면 계획을 잘 짜야 했다. 베란다 가득 식물을 들여서 정글처럼 꾸밀 것인지, 아니면 가지고 있는 화분들로 만족할 것인지 마음을 정해야 한다. 한 쪽에는 식물들 사이 둘러싸여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면 좋겠고, 부엌에서 바로 창문만 열면 손닿는 곳에 파를 키워보고도 싶고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면 꽤 넓어보였던 베란다도 내 욕심에 비해 좁기만 하다.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할 부분과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을 잘 골라서 공간을 계획한다. 한 번에 완벽한 계획을 짜기 보다는 대략적인 계획을 잡고 우선은 공간을 구획해보는 것이 좋다. 지내면서 생활하기 더 편한 형태로 조금씩 바꾸게 되고, 막상 지내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이 생겨나기도 한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이후 수정사항이 생기더라도 그 과정을 나를 위한 공간으로 맞춰가는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다. 공간을 꾸미는 일은 창의력도 필요하고, 손도 많이 가고, 품을 많이 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베란다 우영팟은 이것저것 시도해 공을 들이는 만큼 애정하는 공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
우선 한 편에는 데크를 조립해서 깔고, 식물에 둘러싸여 앉아 책을 읽거나 멍 때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한다. 이것저것 선반으로 쓸 만한 것이 있다면 끌고 와서 적당한 위치에 두고, 함께 이사 온 식물들을 올려놓는다. 천장에도 달고 벽에도 달고 다양한 위치에 두기 위해 머리를 굴려본다. 본격적으로 작물을 기를 공간도 구성한다. 기르고 싶은 작물이 많으니 좁은 공간을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위치뿐만 아니라 어떤 화분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 또 함께 심으면 좋은 작물은 누군지 나름 여러 가지 조사도 필요하다. 나무상자를 얻어오고, 커다란 부직포 화분도 몇 개 사고, 흙도 몇 포대 사두면 드디어 식물을 들여올 차례다.
우영팟 계획하기
처음 계획은 가능한 마트에서 사 먹은 채소의 씨앗을 발아시켜서 기르거나 아니면 씨앗을 사와서 처음부터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씨앗이 모종이 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리고,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씨앗을 사자니 한 봉지에 너무 많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3가지 방법을 다 이용하게 되었다. 씨앗을 사기도 하고, 모종을 사기도 하고, 마트에서 사 먹은 채소의 씨앗을 발아시켜 모종을 만들기도 했다.
모종을 살 때는 왠지 계획보다도 더 욕심을 부리게 되었는데, 만원짜리 상품권을 가져갔기 때문이었는지 금액을 만원에 맞추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모종의 종류만 무려 열 가지나 사와 버렸다. 오이, 가지, 오이고추, 파프리카, 옥수수, 애호박, 수박, 곰취, 방울토마토, 토마토, 이렇게나 많이 데리고 와버렸다. 아마 욕심을 부린 가장 큰 이유는 나만의 우영팟을 처음 갖게 된 설렘 때문일 것이다. 사온 모종만 보면 그래도 몇 평짜리 우영팟이 있나보다 싶은 양인데, 현실은 우리 집 베란다 화분에 심겨진다. 좁고 열악한 공간에 낑겨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미안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함께 잘 살고 있다. 직접 사 먹고 씨앗을 발아시켜 아직까지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은 단호박,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레몬이 있다. 씨앗을 사다 심은 작물은 상추, 깻잎, 부추, 완두콩 정도. 아, 부엌 찬장에 있던 강낭콩도 한두 개 심었다.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오히려 완두콩보다 강낭콩이 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허브류 씨앗은 사두기만 하고 아직 못 심었다.
햇빛 따라 이사하기
가장 내 애를 태운 건 햇빛이었다. 밖은 쨍쨍하게 햇빛이 내려쬐는데 우리 집 작물은 창문으로 잠깐 들어오는 조각 빛만 받고 있는 것 같아 속이 탔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직사광선을 더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햇빛 방향 따라 화분을 직접 옮기기도 했다. 물론 하루 종일 우영팟만 지켜볼 수도 없고, 부질없는 짓이라 하루 만에 그만뒀다. 대신 화분을 베란다 창가에 딱 붙이고 창문을 활짝 열어줬다. 동향 베란다에 살 때는 남향베란다가 그렇게 부럽더니 남향베란다가 생기니 옥상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럽다. 가진 것에 만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영팟 계획도
함께 심으면 좋은 작물의 정보를 찾아서 계획도를 만들었다. 막상 심을 때 계획대로만 심지는 않았지만 계획도를 만들어 두니 모종을 살 때도, 심을 때도 도움이 되었다. 토비 헤멘웨이의 책 <가이아의 정원>에 보면 ‘세 자매 길드’가 나온다. 호박, 옥수수, 콩 세 작물의 조합으로 상호 연결되어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우리 집 세 자매 길드는 서로의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무척 잘 자라고 있다.
열매 맺힌 수박, 오이
오이는 수정을 하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다. 수정을 하면 구부러진 오이가 되고, 수정을 하지 않으면 곧은 오이가 나온다고 한다. 나는 수정을 하지 않으려고 수꽃 봉오리가 보일 때마다 따주고 있다. 암꽃은 처음부터 열매를 달고 피어난다. 참고로 활짝 펴버린 수꽃은 요리에 쓰면 좋다. 수박 역시 처음부터 암꽃에 열매가 달려있다. 수박은 붓으로 직접 수정 작업을 해줬다. 과연 정말 베란다에서 수박을 길러 먹을 수 있을지 기대 중이다.
감자 수확
5월 말에 감자 화분 하나를 수확해 보았다. 더 기다리고 싶었지만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줄기 하나가 다 시들어버려서 그냥 수확하기로 했다. 조금 일찍 수확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작은 감자들. 동글동글 너무 귀여운 알감자다. 너무 당연하지만 진짜 감자 맛이 났다. 이것이 바로 포슬포슬 부드러운 햇감자. 다른 두 개의 화분은 좀 더 지켜보다가 수확하는 것으로.
베란다 우영팟 최근 사진
한 때 ‘파테크(파와 재테크의 합성어)’가 유행이었는데, 파는 정말 아침과 저녁이 다를 만큼 빠르게 잘 자란다. 나는 마트에서 대파를 사와 심었다. 죽은 잔뿌리는 정리하고 대파의 흰 뿌리부분을 살려서 잘라 부엌 바로 앞 창가에 심었다. 나는 조금 얕게 심었는데 흰 뿌리 부분을 깊게 심을수록 좋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한 달 정도면 다시 자란 대파를 수확해서 먹을 수 있다. 자라는 중 혹시나 꽃대가 올라온다면 꽃이 피기 전에 얼른 뿌리만 남기고 수확한다. 남은 뿌리에서는 대파가 또 자라난다.
페트병을 활용해 물뿌리개, 모종삽 만들기
- 페트병 뚜껑에 송곳을 이용해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주면 물뿌리개 완성.
*송곳을 불에 달구면 쉽게 구멍을 뚫을 수 있다.
*식물에 물을 줄 때는 수돗물을 바로 주기 보다는 미리 병에 담아 하루 이틀정도 염소를 날린 뒤 식물에게 주면 더 좋다.
- 튼튼한 소재의 페트병을 사진처럼 사선으로 잘라 모종삽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플라스틱 모종삽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자른 부위는 너무 날카롭지 않도록 사포를 활용해 살짝 갈아준다.